장군의 사람들


■ 나대용(羅大用:1556~1612)
1556년 전라도 나주에서 출생한 나대용은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인 1591년 사촌동생 나치용과 함께 이순신 장군의 휘하 군관으로 들어가, 돌격전투함 거북선 및 전선을 건조하는 책임자로 활약하였다.

거북선은 당시 조선의 주력 전선인 판옥선을 기본으로 일본과의 해전을 위해 특수 고안된 전투함이다. 백병전에 능한 적이 전선에 넘어오지 못하도록 쇠못이 박힌 지붕을 덮었으며, 해전 시에는 제일 먼저 적의 진영에 돌격해 사방에 탑재된 포를 쏘며 진영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거북선이 임진왜란 해전에서 큰 몫을 하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나대용은 뛰어난 선박제조기술자인 동시에 옥포, 당포, 사천 등 임진왜란의 여러 해전에 참전해 큰 공을 세웠다. 특히 사천해전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투 중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선박연구를 계속하여 칼과 창을 촘촘히 꽂은 전투선 창선(槍船)을 발명하기도 하였다.

■ 어영담 (魚泳潭: 1532-1594)
1592년 임진왜란 발발 당시, 어영담은 전라좌수사인 이순신의 관할지역인 광양지역의 현감으로 재직하였다. 그는 바닷가에서 자라 배를 운용하는 기술이 뛰어났고, 특히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의 물길과 지형을 잘 알고 있어 물길전문가로 활약하였다. 그의 이러한 재능이 임진왜란 해전에서 조선수군의 승리에 큰 기여를 하였음은 물론이다. 어영담은 첫 해전인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1594년 4월 한산도 진영에서 전염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한산도해전, 부산포 해전 등 크고 작은 여러 해전에 참전해 큰 공을 세웠다.

1594년 4월 9일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에는 “조방장 어영담이 세상을 떠났다. 이 슬픔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라는 기록이 있을 만큼 장군이 무척 아끼고 사랑하였던 부하였다.

■ 유성룡 (柳成龍: 1542-1607)
조선의 최고위 관직 중 하나인 좌의정의 자리에 있던 유성룡은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군사 최고 책임자인 병조판서를 겸하며 군사업무를 총괄하게 되었다. 이후 7년의 임진왜란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군무, 행정, 외교 등의 모든 나랏일을 총괄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유성룡은 임진왜란의 해전과 육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두 장수 이순신과 권율을 사전에 추천하여 전쟁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특히 이순신 장군과는 어려서부터 알고 지냈으며, 일찍이 장군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사랑하여 장군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각별한 도움을 주었다.

대학자인 유성룡은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징비록(懲毖錄)’이라는 유명한 기록을 남겼다. 징비록의 서두에는 임진왜란을 교훈삼아 후일에 있을 환란을 경계하라는 의의를 밝히고 있다.